전시

감정을 잃은 무채색의 도시, 그 회색의 표면 아래로, 식지 않고 잔류하는 온도가 남는다.
전시 〈초록 너머의 온도〉는 감정을 개인의 내면에 갇힌 심리로만 보지 않는다. 감정은 틈을 찾아 번지고, 공간을 점유하고, 서로를 연결하고 단절하는, 하나의 생명력으로 작동한다. 이때 초록은 자연의 색이 아니라, 동시대가 공유하는 정서의 흐름을 닮은 ‘감정식물’의 형상이다.
〈숨의 경계에서〉는 작가가 지속해 온 은신처이자 동시에 디스토피아인 물 속에 잠긴 공간과 감정식물이 맞닿는 또 다른 경계의 지점을 다룬다. 짙은 푸른 기류와 하얗게 쓸린 빛은 잠긴 공간의 차가운 압력을 만들고, 아래쪽의 초록은 조용히 증식한다. 바닥에 핀 흰 꽃들은 ‘시스투스(Cistus)’를 모티프로 한다. 시스투스가 지닌 ‘스스로를 소모하며 사라지는’ 식물의 능동성은, 작가가 도상으로 그려온 〈사라질 결심〉 시리즈의 핵심이다. 중앙의 검은 형상은 구체적인 인물을 설명하기보다, 숨이 가장 가까이 응집되는 지점을 표시한다. 형태는 고정되어 있지만, 주변의 기류와 식생은 계속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이 새로운 경계는 이후 <맞닿음> 시리즈로 이동한다. 인체와 식물이 맞닿는 형상을 보여주는 시리즈는 생명력을 잃은 인체 일부분들로 시작한다. 멈춘 몸, 반응하지 않는 피부, 무채색의 도시와 다를 바 없는 생기 없는 형상이 먼저 등장하며, 그 주변으로 감정식물이 스며든다. 식물은 위로처럼 다가오지 않는다. 침투하듯 번지고, 감싸듯 덮고, 결국 형태의 경계를 흔든다.
올해 새롭게 완성된 ‘맞닿음’ 시리즈들은, 이전보다 더 가까운 거리에서 접촉을 다룬다. 화면에는 인체와 감정식물이 서로를 향해 다가가며, 닿는 순간의 긴장과 무게가 남는다. 인체의 형태는 이전보다 분명한 윤곽을 유지한 채 놓이고, 인체와 인체가 접촉하며, 그 위로 초록이 번져나가고, 초록은 그 주변을 둘러싸거나 파고들며 ‘감정’의 방향을 만든다. 이러한 접촉들은 친밀함이라기보다 어딘가 어색한 정적과 함께 기묘한 느낌을 준다. 인체와 인체의 접촉, 인체와 식물의 접촉은 무엇이 무엇을 바꾸는지 단정하기 어려운 상태에서, 그 자리에는 특정한 온도만이 남는다.
여기서 작가는 묻는다.
초록은 정말 바깥에서 들어오는가, 아니면 이미 안쪽에 있었는가.
우리가 ‘감정’이라 부르는 것은 서로를 살리는 힘인가, 서로를 잠식하는 방식인가.
지금 이곳은 은신처인가, 디스토피아인가.
숨은 몸의 안쪽에서 끝나는가, 아니면 공간을 바꾸는 방식으로 남는가.
그리고 이 풍경에 남는 온도는 자연의 기온인가, 누군가의 잔류인가.
마지막으로, 그 접촉의 흔적은 누구의 몸에 남는가.
전시일정
2026. 3. 8.(일) ~ 3.21.(토)
(정기 휴관일: 매주 월요일)
📍전시장소
서울특별시 노원구 공릉동 29-1 화랑대철도공원 내
후원 | 노원문화재단